-에디터 프리구티

 매일 똑같은 출근길에 진절머리가 날 때가 있어요. 6-1, 8-2, 2-4. 지하철을 갈아탈 때마다, 빠른 환승이 가능한 문에 무의식적으로 서 있을 때. 신당역, 군자역처럼 사람들이 많이 내리는 역에 다다르면, 자연스레 앉을 기회를 엿볼 때. 너무 익숙해진 탓에 마음이 더부룩해지곤 합니다. 델리만쥬 3개를 내리 먹은 것처럼요. 

 그럴 때면 출근길에 변주를 주곤 해요. 소심한 반항을 곁들이죠. 일부러 한 정거장 뒤 혹은 한 정거장 전에 내려 거리를 산책하기도 하고, 회사에서 최대한 먼 출구로 나와 빙빙 돌아서 출근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기행도 가끔일 뿐, 더부룩한 마음을 시원하게 풀어주지는 못하더라고요. 출근길 권태기는 마치 환절기 감기처럼, 분기에 한 번씩은 꼭 도지는 연례행사인데 말이죠. 

 얼마 전, 저는 또다시 권태기가 도졌습니다. 이번에는 매일 마주치는 똑같은 인물에 멀미를 느꼈어요. 매일 8시 55분경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는 멋쟁이 선글라스 할아버님, 매일 9시 20분경 잠실역에서 항상 모자를 뒤로 쓰며 걷는 남자, 매일 9시 50분쯤 국민은행 앞에서 왁자지껄 웃음 섞인 통화를 하며 담배를 피우는 아주머님. 매일 마주치는데도 도무지 바뀌지 않는 그들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요. 그들은 아무 잘못이 없지만 말이죠. 

 익숙함이란 무엇일지 고민해 봤어요. 어떤 대상을 자주 보거나 겪어서 처음 대하지 않는 느낌이 드는 상태. ‘익숙하다’의 사전적 뜻풀이입니다. 그러나 익숙함은 얼마나 자주 겪는지, 그 빈도에 따라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매일 봐도 새롭고, 매일 봐도 즐거운 그런 것들이 분명 존재하니까요.

 또한 익숙함의 원인을 바뀌지 않는 상황 탓으로 돌리는 건 괘씸합니다. 환경과 사물, 사람은 언제나 변하기 때문이죠. 다만, 타인의 바뀐 헤어스타일을 잘 알아채지 못하는 것처럼, 관심이 향하지 않는다면 그 변화를 알아채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고민 끝에 제가 찾은 ‘익숙함’의 원류는 무언가에 더 이상 애정을 들이지 않을 때, 혹은 애정을 들일 기력이 없을 때였어요. 

 어쩌면 멋쟁이 선글라스 할아버님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아닐지 몰라요. 산책하다가 잠시 숨을 돌리고 계신 걸 수도 있죠. 항상 모자를 뒤로 쓰며 걷는 남자는 가끔 비니를 착용했을지도 몰라요. 그저 제가 그들의 단면만을 보며 똑같은 환경에 싫증을 느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