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다루는 치료사

고윤 님에게 후회를 묻다

- 발행인 평정

 삶은 고통의 연속이라고도 해요. 알람 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켜서, 다시 같은 침대에 누울 때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고통들을 견디며 살아갈까요? 그걸 줄이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숙제이기에 심리적인 고통도, 물리적인 고통도 완화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이들이 있어요. 

 몸으로 느끼는 고통을 완화하는 직업, 그중에서도 삶의 끝에 선 이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일을 한다면 어떤 장면들을 마주하며 살아갈까요? 생명을 위협할 만한 질병을 겪고 재활을 하는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그걸 들은 우리는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오늘은 특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물리치료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어떤 질문에 답해오며

지금을 선택했나요?

과거의 여정 속 질문

 Q 구독자 분들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울의 한 병원에서 특수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물리치료사 고윤이라고 합니다. 주로 암 환자의 재활을 돕고 있어요. 흔히 말하는 도수치료가 아닌, 다른 분야의 물리치료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Q 어떻게 지금의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막연하게 병원에서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등학교 때, 발목을 다쳐서 지속적인 치료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이 인상적이었죠. 병원 사람들의 태도도, 그들이 해내는 일들도 매력적으로 보였거든요. 당연히 미래의 안정성도 고려했고요. 그래서 조금은 가벼운 이유로 처음에 직업을 골랐습니다.

 Q 본명이 아닌 닉네임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셨는데, 어떤 뜻인가요?

 제 본명이 부르기 좀 어려운 이름이에요. 최근에 키르기스스탄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만난 가이드님이 일주일동안 노력하셔도 온전히 제 이름을 부르지 못하시더라고요. 그때 결국 따로 지어주신 키르기스스탄식 이름이 <고윤>인데, 나름 마음에 들어서 닉네임으로 쓰고 있어요. 

직접 촬영하신 키르기스스탄 사진

 Q 모험적인 여행부터, 사진 촬영이나 커피 등등... 취미 부자라고 들었어요. 계기가 있을까요?

 맞아요. 어쩌다 보니 사진 촬영도 취미로 하고, 바리스타나 필라테스 강사는 자격증도 땄네요. 어릴 적부터 배우던 피아노도 꾸준히 하고 있어요.

 이렇게 당장에 하고 싶은 걸 주저하지 않는 건, 환자들의 영향이 컸죠. 어쩌면 삶의 끝과도 가까운 이들이 입을 모아 하는 이야기는, '하고 싶은 걸 참다가 이렇게 병들었다' 는 거예요. 그 무엇보다도 스트레스가 자신에게 치명적이었고, 스트레스의 근원은 모두 부자유에 있다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저도 눈앞의 '하고 싶은 일' 들을 주저하지 않게 됐네요.

 Q 환자분들이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게 신기한데, 가장 큰 스트레스로 꼽는 건 뭐였나요?

 결혼입니다(웃음) 단순히 결혼이 그 자체로 나쁘다기보다는, 한국 사회에서 중년 이상의 세대가 고르게 되는 가장 능동적이지 못한 선택이 결혼이었던 것 같아요. 가장이 되는 것도, 주부가 되는 것도 모두 포기하게 되는 게 너무 많잖아요. 그럼에도 그 결정이 관성적으로 많이 이루어졌으니까요.

 그때 가정에 갇혀버리지 않았더라면, 하고 싶었던 일들이 참 많았다는 이야기들을 자주 해주세요. 저도 그래서 나이가 조금 찼음에도 결혼을 안한 게,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인가 싶기도 해요.

Q 치료라는 것이, 이 환자를 어떤 상태까지 돌려놓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지도 궁금했어요.

 어떤 환자의 과거의 특정 상태가 아니라, 평균적인, 평범한 이들의 일상생활을 100이라고 보고 거기까지를 목표로 해요. 뛰어난 운동선수의 신체능력 같은 게 아니더라도, 평범한 일상생활 역시 누군가에게는 닿기 어려운 목표가 되기도 해요. 한번 크게 질병을 겪으면 정말 그렇죠.
 사실 온전히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치만 거기에 시선을 두고 묵묵히 치료를 견디는 분들을 보면, 적어도 그 온전함을 꿈꾸는 건 중요한 것 같습니다.

 Q 고윤님 스스로가 겪는 고통은 어떻게 이겨내는지도 알려주세요.

 객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고통 속에서는 고통이 잘 보이지 않으니까요. 일단 거기서 한 발 떨어지려고 노력하죠. 이것도 환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인생 길다, 이거 하나는 그저 사소한 일이다' 라는 관점을 가지게 됐거든요. 크게 보면 삶에서 진짜 중요한 선택과 사건들은 따로 있고, 지금 나를 조금 괴롭히는 고통은 아주아주 사소하다고 생각하려고 해요.

 그래서 작은 규칙도 지키려고 하던 완벽주의도 조금은 내려놓는 중이에요. 이 물건이 여기 있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고, 그것이 어겨졌을 수도 있죠. 그치만 아무렴 어떤가요? 인생 길잖아요(웃음)

앞으로 어떤 질문을 건네며

나아가고 싶나요?

미래의 다짐 속 질문

 Q 치료사로서, 독자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고요?

 운동이 정말 중요합니다.

 가끔은 우리가 피할 수 없는 사고나 질병들도 있어요. 그러면 치료가 필수적인데, 운동을 평상시에 한 분들의 회복력은 정말 큰 차이가 나거든요. 안 다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더 빨리 일어나는 능력도 중요해요. 운동하세요. (당연히 너무 무리하진 마시구요)
 그리고, 언제나 예방이 치료보다 중요합니다. 사실 건강한 삶이 어떤 건지는 여러분도 잘 아실 테니까요. 되도록이면 직장에서 저와 만나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 멀리서만 서로를 응원하자구요.

 Q 마지막으로 어떤 질문을 퀘스천퍼데이 독자분들에게 건네고 싶나요?

 내려놨을 때 비로소 내가 되는 것이 있진 않나요? 라는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무엇에든 매몰이 되면, 그게 정답인 줄 알고 달려가게 돼요. 그리고 생각보다 오래, 주변을 둘러보지도 않고 가게 되죠. 그렇게 앞만 보고 가다가 자기가 잘못 왔다고, 삶을 망쳤다고 후회하는 분들을 매일 만납니다. 그 세월이 몇십 년은 기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좀더 자주 스스로를 돌아봐야 하죠.

 지금 자신이 목표하는 것이, 진정으로 능동적으로 스스로 고른 것이 맞는지 다시 생각해보세요. 그 결정의 순간에는 정말 능동적인 선택이 맞았더라도, 지금도 그 목표의 달성이 자신을 위한 것이 맞나요? 한 번 고른 선택에 따라서, 그 관성에 이끌려 끝까지 가려고 하는 건 아닌지도 주의해야 해요. 그렇게 돌아보면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내 삶의 전부라고 생각할 만큼 정말 중요한 것인 줄 알았지만, 막상 내려놓으니 진짜 내가 되는 것이 있지는 않나요? 있다면 구독자 여러분이 꼭 찾아내기를 바라요.

 그것이 죽음과 가까운 순간, 가장 후회하게 되는 선택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