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환경 탓하지 마’. 무언가 일이 안 풀릴 때, 특히나 집중력이 떨어질 때면 나약한 나 자신을 탓하곤 했어요. 어디에 놓여 있든,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든, 헤쳐나가지 못했다면 의지박약으로 치부해 버리는 거죠. 환경을 탓하는 건 곧 나약한 저를 탓하는 꼴이라고 믿었습니다. 환경만 탓하는 것도 그리 좋은 방법은 아니지만, 나이를 한 움큼씩 먹다 보니, 몰입을 위한 최적의 환경이란 게 분명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이왕이면 그 최적의 환경에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도록 합니다. 아침만 되면 뇌를 잠시 다른 곳에다가 보관한 듯 멍한 상태가 되는 저는, 밤 10시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요. 기왕이면 책상 위에는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모니터 속 창은 하나만 보이도록 세팅해 두죠. 그리고 만약의 상태를 대비해 주의력을 뺏어가는 제 핸드폰은 책상 저 멀리 침대에 던져두곤 합니다.

 운동선수의 루틴과 비슷한 것 같아요. 레전드 테니스 선수 나달은 총 경기 전 12가지의 루틴을 지녔다고 해요. 가방에 넣을 라켓의 개수, 서브를 넣기 전 해야 할 5가지 동작, 에너지 드링크와 물을 마시는 순서. 읽다 보면 지독하다기보다, 잘하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이자, 몰입하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관찰한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루틴이라는 것도 ‘나 내일부터 아침에 물 한 컵씩 먹어야지!’라는 뜬금없는 결심이 아닌 ‘아침에 물을 마시니 상쾌하네?’라는 경험적 지식에서 시작되니까요.

 강박이 되어선 안 되지만,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을 능동적으로 조율한다면 집중력을 끌어다 모을 수 있죠. 남이 보기엔 호들갑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얼마나 나에게 맞는 환경을 마련해 주느냐는 삶을 밀도 있게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건이 되는 것 같아요. 기왕이면 더 좋은 환경에서, 내게 맞는 방식으로 몰입의 기회를 주는 게 과업을 해나가는 데 있어 수월하지 않을까요? 여러분은 언제, 어디서 가장 몰입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