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꿈을 포기한 적 있나요?

– 에디터 프리구티

영화 『블루 자이언트』가 건네는 질문

*오늘의 글에는 『블루 자이언트』의 결말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릴 적 꿈 기억 나나요? 떠올려 보면 반쯤은 허무맹랑 하다고, 또 반쯤은 야망이 넘친다고 부를 수 있는 원대한 꿈. 제 경우에는 운동선수였어요. 초등학교 시절 ‘야 4반에 걔 막아야 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이름을 날렸던 축구광이었기에, 축구 선수라는 꿈을 가지는 건 자연스러웠죠. 늦잠을 불사하고 아침 일찍 일어나 홀로 연습하고, 체할 듯 점심을 처리한 후 옆 반과 경기하고, 밤늦게까지 아파트 광장에서 마저 공을 찼었죠. 그러나 뜨거웠던 이 꿈을 포기하게 된 슬픈 이유가 있었어요. 타 초등학교 축구부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부모님의 거절로 무산됐고, 이후 성장판이 닫힌 듯 키가 영 크지 않으면서 꿈을 포기하게 됐습니다.

 나이를 먹어 가면서 꿈이 꼭 직업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는 다채로운 꿈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카페, 펜션, 작업실 등 어떤 형태로든 나만의 공간을 만드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이른 결혼을 하는 것, 계획 없이 떠돌며 여행하는 것. 성인이 되고 나서도 제 꿈의 크기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곳곳에서 손을 들기 시작했어요. ‘그냥 좋아하면 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는 순진한 질문이 통하지 않는 나이가 된 걸까요. 물론 앞선 질문을 품에 안고 놓아주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끝까지 달려갔음에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만나거나 이러다 정말 굶어 죽겠구나 싶은 현실적인 이유로 달리기를 멈추기도 했어요. 그런 탓에 점점 얼마 남지 않은 제 꿈 또한 터지길 기다리는 풍선이 된 것만 같고, 더 이상 새로운 풍선을 부는 것도 망설여지곤 합니다.

 이런 저와 달리, 몸과 영혼을 바쳐 꿈을 좇는 청춘들이 등장하는 영화 한 편을 보게 됐어요. 제목은 <블루 자이언트>. 동명의 장편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청춘들의 재즈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는, 이른바 재즈판 슬램덩크 같은 애니메이션입니다. 영화의 제목 또한 붉다 못해 푸르게 타오르는 고온의 불을 연상시키는 단어를 사용할 정도로, 그들의 땀과 열기가 영화 보는 내내 느껴졌죠.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야.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주인공 미야모토 다이는 중학교 시절, 재즈 연주회에서 색소폰 연주에 푹 빠져들어 재즈 연주자가 되기로 결심해요. 한 번도 색소폰을 잡아본 적 없는 초심자 다이는 3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강가에서 무작정 불어대기만 하며 실력을 키워갑니다. 그의 목표는 단 하나. 세계 최고의 색소폰 연주자가 되는 것이죠. 다이와 재즈 밴드를 이루는 멤버는 두 명입니다. 피아노 교실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이른 나이부터 피아노를 연주했고, 이미 유수의 재즈 밴드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정도로 실력자인, 피아니스트 사와베 유키노리. 그리고 대학에 진학 후 축구부에 입단했지만, 열정 없이 술 먹는 데에만 열중하는 선배들의 모습에 의욕을 잃고, 드럼을 배우기 시작한 타마다 슌지.

 이들은 도쿄 최고의 재즈바로 불리는 ‘So Blue’에서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매일을 바칩니다. 다이와 유키노리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알바를 병행하며 연주에 임하고, 대학생 슌지는 정학을 받을 정도로 하루종일 집에 틀어박혀 드럼 연습에 몰두했죠. 그렇게 이들은 재즈 밴드 ‘JASS’를 결성하게 돼요. 시작한 과정은 모두 다르지만, 재즈를 향한 각자의 꿈이 모여 밴드가 결성된 거죠.

 등장인물 중 유독 슌지에게 정이 갔어요. 어릴 때는 나루토의 사스케, 슬램덩크의 정대만, 원피스의 상디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순수 재능으로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는 캐릭터를 선호했어요. 그러나 성인이 되고 나서는 시작이 늦더라도, 재능이 없더라도, 자신의 열정을 방향 삼아 달리는 슌지 같은 캐릭터에 눈길이 가더군요. 슌지는 드럼을 친지 불과 1년 만에 드럼 솔로를 할 정도로 오직 노력만으로 실력을 키우게 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재즈를, 그리고 자신의 재즈 밴드와 연주를 사랑하게 되죠. 실력이 뛰어난 다이와 유키노리와 달리, 슌지는 관객들의 이목에서 벗어나 있었어요. 영화 중반, 한 노인이 슌지에게 건넨 응원이자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슌지에게 전하고 싶던 말이 등장했어요.

 “첫 공연으로부터 8개월. 자네의 드럼은 좋아지고 있어. 나는 자네의 성장하는 드럼을 들으러 오는 걸세.”

 슌지의 실력이 늘수록, 슌지는 재즈 밴드 ‘Jass’의 성공에 더 몰두하게 됩니다. 다이 그리고 유키노리와 함께 팀을 이뤄 합주하는 쾌감이, 손에 물집이 잡히고 잠을 자지 못해도 그의 열정을 태우는 장작이었죠. 그러나 재즈 밴드는 여타 다른 장르의 팀과는 달리 결속력이 약한 편이에요. 각자 합을 이뤄 재즈 밴드를 이루다가도, 실력이 뛰어난 재즈 연주자는 다음을 위해 팀을 나가는 게 자연스럽죠. 재즈 연주자가 팀을 옮기며 연주를 이어가는 게 그리 어색하지 않으며, 개인의 이름을 딴 자신만의 밴드를 만들기도 해요. 그리고 슌지도 어느 순간 깨닫게 됩니다. 다이, 유키노리의 실력과 재능에 비해 소소한 자신의 실력과 함께, 어쩌면 자신이 그들의 미래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휩싸이죠.

 “재즈 밴드는 록 밴드처럼 영원하지 않아. 서로를 발판 삼을 뿐이야.”

 결국, 밴드 멤버의 일원으로서 함께 하고자 했던 슌지의 꿈이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Jass’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재즈 밴드가 되는 아름다운 결말로 이어지지 않았죠. 각자의 꿈은 제각기 흩어졌어요. 주인공 다이는 계속해서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꿈을 이어 나갑니다. 해외로 나가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펼치기로 마음 먹죠. 사와베 유키노리는 불의의 사고로 한쪽 팔을 잃게 됩니다. 그는 연주자로서의 꿈을 포기하게 되지만, 작곡가로서의 꿈을 이어나가기로 마음 먹어요. 그러나 꿈을 잃은 타마다 슌지는 드럼을 치지 않고 영업 사원이 됩니다. 결국 슌지는 꿈을 포기한 낙오자가 된 걸까요?

 포기하게 되면 모든 것이 사라진 듯 느껴집니다. 남아 있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막에 홀로 떨어진 것 같고, 그간의 열정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 것만 같죠.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과의 잎은 시들지라도, 그 과정에서 뿌려진 씨앗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흘린 땀과 눈물, 열망과 좌절은 모두 삶의 토양에 스며들어 이후의 나를 지탱하는 힘으로 남는다고 믿어요.

 슌지가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 뜨거운 눈물과 환희의 미소가 겹치는 순간을 맞이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겁니다. 그는 결국 꿈을 이어가지 못했지만, 인간은 꿈으로 먹고 산다는 말처럼, 꿈은 도달하기 위한 목적지가 아니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 그 자체였는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꿈은 이루어야만 의미가 있는 걸까요? 아니면 그 길 위에서 치열하게 걸어온 시간 속에 이미 의미가 자리하고 있는 걸까요? 우리는 흔히 포기를 실패와 동일시하지만, 사실 포기한 꿈 또한 삶을 지탱하는 또 다른 기둥이 됩니다. 이루지 못한 꿈이 남긴 흔적은 헛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이루는 토대이자 또 다른 가능성을 지켜내는 힘이 되기 때문이죠.

 물론 꿈을 포기한다는 것은 살점을 떼어내는 것과 같은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꿈을 꾸게 되는 다양한 이유가 있듯, 꿈을 포기하게 되는 다양한 이유도 있다고 믿습니다. 현실과 꿈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꿈이란 언제나 완성된 형태로 손에 쥐어야만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해요. 바스라진 꿈이더라도 그 장면은 우리네 삶에 어떤 식으로든 칠해져 있을 거고요.

 여러분은 슌지처럼 눈물과 웃음이 겹치는 순간, 꿈의 포기 앞에 선 적이 있나요? 그때 무엇을 잃었고, 또 무엇을 얻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