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 수 있을까요?

– 발행인 평정

*이 글에서는 소설이자 동명의 앨범인 <자몽살구클럽>을 다루며, 그 내용 일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온전히 이 창작물을 느끼고 싶으신 분들은, 음악과 소설을 접하신 뒤에 글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살구 싶네,

살구 싶어라

살구 싶다."

- 한로로의 소설 <자몽살구클럽> 중

 청춘과 연대, 사랑을 노래하는 아티스트 한로로는 지난 7월, 음반이 아닌 ‘소설’ <자몽살구클럽>을 내놓으며 작가로 데뷔해요. 8월에는 3번째 EP앨범인 동명의 음반을 내놓으며, 소설과 음악이 결합된 창작물을 완성했죠.

 소설 <자몽살구클럽>에는 죽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분투하는 4명의 중학생이 나옵니다. 자몽살구클럽은 비밀 동아리로, 동아리 이름을 줄여 말했을 때 바로 알 수 있다시피 ‘자살’과 깊은 관련이 있어요. 자살을 하기 위한 동아리는 아니고, 살 이유가 없는 이들이 모여 서로의 자살을 막아주며 살아갈 이유를 찾는 클럽이죠.

 앨범 <자몽살구클럽>의 모든 트랙은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예요. 오늘은 이 7개의 곡 중 <0+0>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한로로가 말하는 사랑 : 0+0 = ∞

 앞서 소개했듯, 아티스트 한로로는 언제나 사랑을 이야기해요. 데뷔곡 <입춘>부터, <비틀비틀 짝짜꿍>과 <사랑하게 될 거야> 등 대표곡들이 모두 공동체적 연대로서의 사랑을 주로 다루고 있죠. <자몽살구클럽>과 그 수록곡 <0+0>의 주제 역시 연대와 사랑입니다.

"제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사랑’입니다. 제 인생의 사랑과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를 한 권에 담았으면 좋겠어요. 장르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로맨스나 판타지 장르로 너무 치우치지는 않았으면 해요. 첫 문장은 ‘그녀는 그녀도 알 수 없는 희한한 사랑이었다.’"

-2025년 8월, VOGUE 인터뷰 중
(’한로로라는 사람의 인생을 소설로 쓴다면?’ 에 대한 답변)

 수학적으로 0+0은 여전히 0입니다. 하지만 한로로의 <0+0>은 단순한 산술을 넘어, 아무것도 없는 두 존재가 만나 영원히 기억될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영영(永永)’의 의미를 담았죠. 한로로는 제목을 ‘영영’이라고 부르며, 영원(永遠)의 의미를 강조하고, 표기조차 듣는 사람이 자유롭게 생각하길 바란다고 밝혔어요. 여기서 0은 단순한 공허함이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개념으로, 두 개의 0이 만나는 순간 ‘우리’라는 새로운 유(有)가 싹트는 과정을 상징합니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무한대를 표현하는 기호 역시 0과 0이 더해진 형태죠. 없음의 상태에서 피어나는 ‘있음’에는, 한계가 없어요.

공(空)의 시선 : 우리의 결핍도, 있는 그대로

 0은 부재와 결핍을 뜻하지만, 동시에 모든 시작의 원점으로서 무한의 잠재력을 품고 있습니다. 소설 <자몽살구클럽>에서 모든 클럽원은 자신이 죽고 싶은 이유를 솔직하게 밝혀야 합니다. 필연적으로 숨기고 싶은 결핍과 상처들이 드러나죠. 이어지는 장면들은 모두 서로의 0을 인정하고도 곁을 지키는 순간입니다. 무작정 바닷가에 가고, 다같이 염색을 하며, 알싸한 소주를 맛보는 사소한 순간들은 이들에게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죠. 무(無)의 상태에서 피어난 삶에의 의지만큼이나 무한한 유(有)가 있을까요? 0+0은 이렇게 단순히 0으로 끝나지 않고, 영원한 ‘영영’으로 변모합니다. 서로의 결핍을 드러내고 마주했으니까요.

 한로로는 그 결핍을 낭만화하지 않고, 냉철할 정도로 직시합니다. 소설 <자몽살구클럽>에는 소모적일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황과 결핍에 대한 묘사들이 존재해요. 그 묘사는 때로 눈을 돌리고 싶은 만큼 날카롭지만, 결코 미화하거나 괜찮아질 거라고 단순히 위로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직시의 시선은 불교의 ‘공(空)’과 닿아 있어요.

 불교에서 “모든 것이 공하다”는 말은, 세상 만물이 고정된 실체 없이 우리의 눈과 마음에 따라 끊임없이 변한다는 뜻입니다. ‘공’은 단순히 텅 빈 것이거나 미완의 부족한 상태가 아니라,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여백이라고 봐야 해요. <자몽살구클럽>의 등장인물들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주죠. 손목에 남은 상처, 발에 박힌 유리, 갑자기 흐르는 눈물과 떨리는 목소리를 마주할 때도 그저 다독여 줄 뿐이죠. 이들은 서로의 결핍에 “왜 그랬어?”라고 묻지 않습니다. 편향된 해석을 붙이지 않고 그저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받아들이죠. 이런 시선을 가진 네 명의 중학생 보현, 태수, 유민, 소하는 자신들의 0을 맞대며 무언가를 만들어내기 시작해요. 유(有)는 이렇게 외면이 아닌 있는 그대로 보는 용기에서 시작되죠.

반쪽의 무한대 : 당신의 0은 혼자인가요?

 그래서 묻습니다. 당신의 결핍과 빈자리는, 0으로서 무(無)의 상태에 머물러 있진 않나요? 다른 0을 찾아나서지 못하고, 그렇게 고독하게 비어 있지는 않나요?

 이 질문은 우리의 일상을 향해요. 우리는 언제나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집중하고, 무언가가 없어 불안할 때, ‘어떻게 채워야 하나’ 고민합니다. 하지만 <자몽살구클럽>과 <0+0>은 반대의 지혜를 가리켜요. 존재하는 결핍을 똑바로 마주하고, 그것을 함께 보듬을 때 비로소 새로운 ‘영영’이 자란다는 시각이죠. 결국 무(無)에서 유(有)를 만드는 일은 기적이 아니라, 서로의 빈자리를 마주하고 그곳에 머무르는 용기입니다. 그 용기로 만들어지는 연대가 바로 사랑이며, 죽지 않고 살아갈 힘이죠.

 여러분의 0은 무엇이며, 그러한 무(無)에서 사랑과 같은 유(有)가 피어날 수 있다고 믿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