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구티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할 때 원래 하고 싶은 말을 정확하게 그대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스스로는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고 해도, 자기 말이 타인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하거나 이 말 때문에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생각하기 때문이지.” 

파스칼 메르시어, <언어의 무게> 中

 어쩌면 저는 전하고자 하는 생각과 감정을 한 번도 타인에게 고스란히 전달하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생각과 감정은 항상 글이나 말이라는 매개체로 요약되어 전해지기 때문이죠. 특히 자신의 치부나 단점을 드러낼 때면, 더욱 왜곡되고 변형되는 것 같아요. 야심차게 질문을 솎아냈지만, 왜곡된 활자를 고치는 데 오랫동안 시간을 쓰고 있네요.  

 누구나 미운 점 하나는 지니고 있습니다. 지인과 소위 ‘빌런’으로 칭해지는 연애 예능의 출연자에 관해 이야기할 때, 이렇게 말하곤 해요. ‘누가 나가도 저 사람처럼 미워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해. 나 또한 충분히 빌런이 될 수 있어.’ 예능이라는 형태 안에서 그들의 미운 점이 유독 도드라질 뿐인 거죠. 실제로 출연자들의 속사정을 알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할 때도 많더라고요. 

 이번 주, 유독 제가 빌런처럼 보이는 날이 많았어요. 거두어야 했던 말을 거두지 못했고, 건네야 했던 말을 건네지 못했죠. 전자의 경우,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순 없었지만, 변명의 말로 보자기처럼 덮어 놓을 순 있었습니다. 숨기고 싶은 말이 비치겠지만요. 그러나 후자의 경우, 말하는 타이밍이 중요했기에 할 수 있는 건 후회뿐이었죠. 

 제게 소중한 사람들이 세상의 혐오, 인생의 풍파, 그리고 어찌할 방도가 없는 운명에 상처를 입었어요. 그들은 각자 아픈 부분을 다양한 형태로 제게 꺼내 보였죠. 한숨 섞인 넋두리와 체념, 괜찮다는 듯한 미소와 얼버무림, 그리고 ‘속상하다’라는 직접적인 감정 표현. 상처 부위를 마주친 저는 안절부절못하며 에둘러 말을 돌려냈어요. 마치 제 손에 흙이 잔뜩 묻어 있는 것처럼, 섣불리 건드렸다간 상처가 되려 곪을 것 같았거든요. 그들이 바랬던 건 그저 따뜻한 위로였을 텐데 말이죠.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상처를 마주치면, 피 공포증이 있는 사람처럼 자꾸 고개를 돌리게 될까요?

 저는 위로가 서툰 사람입니다. 어쭙잖은 위로를 건넸던 적도 있지만, 아픔을 보듬어주었던 말들은 아니었어요. 이런저런 고민 끝에 단어를 선택하지만 끝내 상투적인 위로의 말만 건네게 됩니다. 그런 탓에 저는 위로를 포기해 버릴 때도 있어요. 누군가의 감정이나 상황을 내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만이라며 합리화를 해버리죠. 타인의 상처를 말똥말똥 바라보거나, 이리저리 다른 주제로 도망칠 때면 제가 너무 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