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편지 속 문장처럼 ‘그리 건강하게 태어나진 못했’어요. 세상 구경을 빨리하고 싶었던 탓에, 조금 이르게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게 되었죠. 팔꿈치에서 손끝까지, 한 자 정도 크기였던 저는 태어나자마자 따뜻한 아기에게 어울리지 않는 차가운 산소마스크와 링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고 해요.

 끝내 저와 어머니는 함께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어요. 어머니는 퇴원했지만, 저는 인큐베이터 안에 남아 있어야 했거든요. 어머니는 저를 남겨두고 떠난 그날의 향기와 풍광이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해요. 만개한 벚꽃 사이로 눈물을 흘렸던 그날. 어머니는 매년 벚꽃이 피어날 때면 그날의 감정에 둘러싸이곤 합니다.

 책장에 꽂혀 있는 또 다른 사진첩을 꺼내 보았어요. 제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의 젊은 나날이 기록되어 있었죠. 사진 속 어머니는 대학교 MT에서 방구석에 쪼그려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어요. 지금의 제게 ‘아저씨’라고 부를 것처럼 어려 보였죠. 어머니도 다음날 숙취로 머리를 감싸 멨을까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검은색 가죽 재킷을 걸친 ‘로커’ 어머니를 지나, 부모님의 신혼 사진이 등장했어요. 어머니는 어디에서든 아버지의 아랫배에 손을 올린 채 안겨 있었죠. 피로연에서 손깍지를 끼고 노래를 열창하는 사진도 있었어요. 절대음감인 어머니는 음치인 아버지와 어떻게 합을 맞췄을까요?

 사진 속 젊은 부모님은 처음 본 영화 속 신인 배우처럼 낯설었어요. 제게 두 분은 저를 따끔하게 혼내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는 부모님이었기에, ‘부모’를 벗어난 두 분의 삶을 지금의 그들과 연결하기 쉽지 않았죠.

 ‘부모’라는 칭호는 많은 것을 가져다주는 동시에, 기존의 모습을 벼랑 끝으로 밀어내기도 합니다. 친할머니는 어머니를 부를 때, 항상 어머니의 이름이 아닌 제 이름을 부르곤 합니다. 그럴 때면 종종 저와 어머니가 동시에 ‘네’라고 대답하곤 하죠. ‘누구 애비’, ‘누구 엄마’로 불리며 이름을 잃기도 하지만, 호칭 너머 나를 이루고 있던 무언가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어버이날은 부모님의 희생에 감사하는 날이지만, 그들이 잃어버린 찬란함을 떠올리니 괜스레 미안함이 앞섭니다. 상실한 것을 되돌릴 순 없지만, 오늘 하루쯤 부모님의 빛났던 젊음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건 어떨까요? ‘부모’ 말고 본명으로 기록된 나날들 말이에요.